나의 삼십대를 돌아보려 한다.
무서운 것이 없었다.
무엇을 해도 자신 있었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하고싶은 것도 많았고 갖고 싶었던 것도 많은 나이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30살에 취업시장에 나와 어찌어찌 대기업 끄트머리에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하였고
일년 근무한 뒤에 바로 나왔다.
전업투자자가 되보겠다고 몇 달 동안 돈과 시간을 버린 뒤 현실로 돌아왔다.
요리로 성공을 해보겠다고 성공한 요리사들의 책을 닥치는대로 읽고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한식, 양식, 이탈리안까지 배우고 음식점을 창업했다.
적은 자본과 경험으로 장사를 시작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일년을 넘기지 못했고 권리금은 절반정도로 깎인채 정리했다.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고 전보다 낮은 체급의 회사들에 면접을 보러 돌아다녔다.
인천의 연우라는 회사에 최종합격이 되었는데 가지 않았다. 연봉이 2천 중반이라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필리핀에서 카지노 사업을 하는 회사에 면접보게 되었고 최종 면접 통과후 필리핀으로
넘어가게되었다. 돈을 많이 벌어보기도 하고 많이 날려보기도 하면서 5년의 세월이 흘렀다.
필리핀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였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캐나다로 방향을 잡았다.
그때는 그 나라의 문화와 사상이 그렇게도 좋아보였다. 아마도 첫 직장에서의
강도 높은 근무환경 경험 때문이었던것 같다.
영주권을 받기 위한 루트로 개발자를 선택하였다.
3개월 가량의 기간에 백엔드 서버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곳이었고,
광고에 현혹되어 큰 돈을 지불하고 열심히 배웠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한 프로그래머의 진로가 순탄치는 않았기에
교육 종료 후 이쪽 길로 가지는 않았다.
아직 캐나다의 꿈은 버리지 않았기에 이번엔 요식업을 통해 영주권에 도전해보고자
길을 찾아갔다. 서울의 일식당에 취업하여 경력을 쌓고 캐나다로 나가는 루트로
방향을 잡았다.
일은 힘들었다. 땀에 흠뻑 젖을 만큼 주방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도 없었다.
한 달을 채우고 바로 그만두었다.
다시 방황을 하다가 이번에는 유투브로 돈을 벌어보고자 마음먹고 시작하였다.
장비를 사고 외국으로 나갔다. 여행 브이로그 형식으로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올렸다.
구독자 천명이 넘어가고 수익창출 승인이 났을때 현실을 깨달았다. 그 시기가 유투브
노란딱지 대란이 일던 시기였다. 지금까지 올린 전체 영상의 70~80프로 가량이 노란딱지
가 붙어 있었다.
버릴 건 버리고 수정할건 수정해서 초록딱지로 바꾸고 다시 영상을 찍고 올리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노란딱지의 늪은 쉽게 헤어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익은 초라했고 노란딱지와의 싸움에 점점 나는 지쳐갔다..
한국에 돌아와 지인의 영어학원에서 몇 달간 일을 하며 마음과 경제적 상황을 추스렸다.
쉬는날 유투브와 넷플릭스 보는게 유일한 낙이었었다. 그러던 중 퍼스트리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김머신님, 헬프맨님 영상도 보게되었다. 예전에 신사임당님 영상을 봤을때도 온라인판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비관적인 의견들이 많았기에 그때는 시작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자신감을 많이 얻었고 성공에 이르기 위한 길들도 더 많이 습득하였다.
늦기 전에 다시 도전해보려 한다. 스마트스토어, 쿠팡 and so on
'Yolo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 여자친구의 단점 5가지 (0) | 2025.04.28 |
---|---|
라오스 여자들의 특징: 귀엽고 순수한 그들만의 매력!! (0) | 2025.04.27 |
코스트코 구매대행 - 가장 먼저 할 일!! (0) | 2020.05.03 |
유투브를 버렸다... (0) | 2020.05.01 |
유투브 저작권 침해 경고 (1) | 2019.08.14 |
댓글